이 땅의 ‘장그래’ 위해 최저임금 인상 부탁해

정부나 재계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인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최저임금위 노동자 위원)


©시사IN 신선영
4월24일 마트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보장을 요구하며 카트를 끌고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했다.

지난 4월30일, 최저임금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올해부터 3년 동안 최저임금을 심의하게 될 열 번째 최저임금위원들이 이날 위촉되었다. 필자는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 위원으로 위촉함’이라는 건조한 글귀가 적힌 위촉장과 함께 청년노동을 대표해 최저임금의 심의·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됐다.

“사용자 위원 분들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정규직의 고용을 위협하면 청년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고, 진정으로 청년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으로 논의를 이어나갑시다.” 최저임금위원의 자격으로 첫 번째 공식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최대한 상냥하게.

2016년 최저임금은 6월 말에 정해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사항들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외치며 대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 고용창출이 부진한 원인으로 일부 정규직의 과도한 고용안정성과 임금 수준을 지목했다. 상위 일자리 정규직들이 ‘과보호’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주변부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데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춰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상은 번지수가 크게 잘못되었다. 만약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의 삶을 위협해 ‘장그래’의 삶이 나아질 것이었다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장 많은 중심부 일자리가 사라진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야말로 청년들은 행복의 나라를 거닐고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정규직을 정리해고나 권고사직 등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해왔다. 또 신규 채용을 줄이고 고용의 책임을 중소·영세기업에 외주·하청으로 떠넘기며 비용 절감의 압력을 아래로 전가했다. 그 결과 멸종 위기에 놓인 ‘괜찮은’ 일자리를 향한 청년들의 경쟁은 심화되고, 그들의 대다수는 저임금·장시간·불안정 노동과 ‘열정 페이’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조차 영위할 수 없는 ‘저열한 노동’이 확산되는 동안, 재벌·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도만 더욱 높아졌다. 10개 재벌 그룹이 대한민국 전체 GDP의 절반이 넘는 수준의 매출액을 올린다. 박근혜 정부에 다시 질문하고 싶다. “과연 누가 과보호되고 있는가?”

정규직 깎아내려 청년 문제 해결한다고?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와 재계의 말장난이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깎아내릴 것이 아니라, 밑바닥에 놓인 청년의 삶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 출발선이 바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지난 5월19일,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자 위원장을 맡은 박준성 교수가 재직한 성신여대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위원회의 ‘교수’ 공익위원들에게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진짜 ‘공익’을 위해 활동해줄 것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대학생이 말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주말을 아르바이트로 채우는 시간도, 6000원 식사 한 끼 앞에서 망설이다 매점에서 빵을 먹는 날도, 피곤한 몸으로 수업에서 조는 시간도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최저임금위원 분들은 한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최저임금은 이렇게 오늘의 밥값과 내일의 삶을 걱정하는 청년들의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는 수많은 당사자들의 삶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논의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써 ‘교섭의 장’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현장 방문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최저임금의 결정 근거로 삼기 위해 위원회 사무국에서 발주한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었건만, 이 자료에는 정작 다음 연도 최저임금이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의견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의견이 없으니 쟁점도 없고, 회의는 매번 공회전하기 일쑤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의전용 의자에 앉은 위원 27명의 몇 마디 의견 개진과 누군가의 메모장에 적힌 예정된 결론으로 나아가는 연극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운영 방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회의가 공개되어야 한다.

회의장 안에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시민들도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현재 참관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 내용이 담긴 회의록조차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박준성 위원장은 “지금까지 그러한 관행이 없어 조심스럽다”라는 답변으로 일축했다.

관행을 핑계로 공개를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 과정과 내용을 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것은 시민의 권리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에 사회적 책임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영세 자영업자가 겪을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논의가 청년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사이 대립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한 채 최저임금 인상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재벌·대기업이야말로 최저임금 인상의 최대 방해꾼이다.

2015년 벼랑 끝에 선 청년의 현실은 우리 사회에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요청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보고서와 회의 자료 몇 장이 오가는 숫자놀음일지 몰라도, 청년이나 노동자에게는 삶 자체를 좌우하는 운명의 시간이다.

“세분화된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대기업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쪽 사용자 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경총 관계자는 “6월 말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전에는 취재에 응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5월18일 소상공인 몫의 사용자 위원으로 참여한 김대준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사진)을 만났다.

직접 참여해본 최저임금위원회는 어떤가?
©시사IN 조남진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은 수정·보완할 게 많다. 노동계나 사용자 모두 최저임금을 정하는 ‘합리적 기준’을 원하고 있다. 소상공인 처지에서는 업종별·지역별·연령별로 세분화된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어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지불 능력이 있는 업종만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야 한다.
현재 위원회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생계비전문위원회에서 활동한다(최저임금위원회 산하에 임금수준전문위원회, 생계비전문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이 있다). 생계비전문위원회에서는 어떤 것을 최저임금의 기준으로 둘 것이냐가 이슈다. 그동안 미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를 기준선으로 삼아 왔는데 노동계에서는 가족 단위, 그러니까 가구 생계비를 최저임금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의 근거가 되는 셈인데, 사용자 위원들은 유보적이다. 그러면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내수 활성화를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자고 했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근로자는 소득이 늘겠지만 소상공인은 곡소리가 난다. 대량해고가 진행되고 소상공인 부부가 12시간 넘게 일하는 ‘생계형 가족 경영’이 늘어날 것이다. 특히 PC방, 주유소, 요식업, 이런 곳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소상공인이 돈을 벌게 해줘야 한다. 대기업 법인세는 인하했다. 하지만 낙수효과는 없었다. 낙수효과를 볼 수 있게 조세제도를 개편하고 갑을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도 막아야 한다. 이런 정책과 함께 최저임금을 올려야지, 중소 상공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14.3%, 270만명이다. 270만 최저임금 근로자는 국민이고 540만 소상공인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근로자가 사회적 빈곤층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다. 그런데 지금은 근로자보다 소상공인이 더 열악하고 취약하다.
2016년에 적정한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내 얘기가 아니라 사용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7~8% 인상, 6000원선이면 해고 없이 감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 이상이 되면 경영 악화나 고용 불안이 생겨 정리해고나 감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사용자들의 얘기다.

최저임금 어떻게 결정되나?

최저임금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헌법 제32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면서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 그리고 공익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다. 2016년 최저임금의 경우, 최저임금위원회가 재적 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6월29일까지 최저임금안을 의결하면, 고용노동부는 8월5일까지 2016년 최저임금을 확정해 고시한다.

그동안 최저임금은 대부분 표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형식은 표결처리지만 내용은 대개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반영한 공익위원들 의견을 따랐다. 1988년 첫해부터 노동자 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이 진행되었다. 이후 대부분은 노동자 위원들이 퇴장하곤 했는데, 간혹 중재에 나선 공익위원들 안에 반발해 사용자 위원들이 퇴장한 경우도 있었다. 노동자·사용자·공익 위원 전원 합의로 최저임금안이 통과된 경우는 7번 있었다. 노동자 위원들은 그동안 헌법과 최저임금법 취지를 앞세워 소득분배 효과를 낼 수 있는 높은 인상률을 제안해왔다. 올해 노동계가 내세운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원이다.

반면 사용자 위원들은 매년 동결을 주장하곤 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마저 반영하지 않은 이런 사용자 위원들의 접근 방식에 공익위원들마저 “최소한 소비자 물가인상률만큼은 반영해서 제안을 해야 회의가 진행되지 않겠느냐”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3월 한 강연에서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어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다”라며 공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까닭인지, 재계는 지난해 인상률과 비슷한 수준인 7% 인상안, 즉 시간당 6000원 안팎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